동쪽으로 보성군 경계까지 46리, 남쪽으로 장흥부 경계까지 44리, 서쪽으로 남평현(南平縣) 경계까지 17리, 북쪽으로 화순현 경계까지 12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7백 58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백제 이릉부리군(尒陵夫里郡) 혹은 죽수부리(竹樹夫里) 또는 인부리(仁夫里)라 한다. 이던 것을 신라에서 지금 이름으로 고쳤고 고려 초년에 나주에 소속시켰었다. 인종 21년에 현령을 두었고 본조 태종 16년에 화순현을 합쳐서 순성현(順城縣)으로 고쳤다가 얼마 안되어 각각 복구시켰다.
【관원】 현령ㆍ훈도 각 1인.
【궁실】 연주(連珠)ㆍ이릉(尒陵)ㆍ죽수(竹樹).
【성씨】 본현 구(具)ㆍ정ㆍ문ㆍ조(曺)ㆍ채ㆍ주ㆍ강 진주. 김 내성(來姓)이다.
【산천】 운산(雲山) 현의 남쪽 1리에 있으니 진산(鎭山)이다. 연주산(連珠山) 현의 동쪽 1리에 있다. 금오산(金鰲山) 현의 동쪽 7리에 있으니 돌 성의 옛터가 있다. 중조산(中條山) 현의 남쪽 57리에 있다. 석천산(石泉山)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천불산(千佛山) 현의 서쪽 25리에 있다. 왜성산(倭城山)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 옛 성터가 있는데 왜적을 막기 위해서 쌓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지은 것이다. 여점(呂岾) 현의 동쪽 63리 보성군 경계가 있다. 차의천(車衣川) 현의 북쪽 5리에 있으니, 여점(呂岾)에서 나와서 북쪽으로 흘러 나주 광탄(廣灘)으로 들어간다.
【토산】 석류ㆍ사기그릇(磁器)ㆍ감ㆍ꿀ㆍ대, 죽전 현의 북쪽 마산(馬山)에서 난다. 차ㆍ송이ㆍ표고버섯 『신증』 지황ㆍ천남성(天南星)ㆍ맥문동(麥門冬).
【누정】 봉서루(鳳棲樓) 객관(客館) 동쪽에 있다. ○ 성임(成任)의 시에, “날마다 달려 잠시도 한가하지 못한데, 여기 오르니 다시 한 번 근심스런 안색 풀리네. 마을이 바다에 가까우니 봄이 항상 빨리 오고, 소나무와 대가 처마에 닿으니 여름에도 춥네. 발을 걷으니 산빛이 그림기둥에 스며들고 해가 비끼니 꽃 그림자는 새긴 난간에 올라오네, 손되어 무한히 집을 생각하는 마음, 글귀를 가지고 억지로 스스로 위안하네.” 하였다. ○ 정창손(鄭昌孫)의 시에, “유람하는 데 지쳐서 잠시도 한가로이 머무를 곳 없더니 홀로 높은 누에 올라 한 번 얼굴을 펴네. 땅이 바다에 가까우니 봄빛 빨리 오고 산은 지리산에 연했으니 새벽 빛이 차네. 연못은 대 그림자 잠그고 꽃 뜰에 침노하고, 바람은 연꽃 향기 이끌어다가 약란(藥欄)으로 보내네. 눈에 가득한 기이한 경치 시 읊고 휘파람 부는데 이바지하니 손되어 시름짓는 마음 비로서 풀리네.” 하였다. 『신증』 영벽정(映碧亭) 연주산(演珠山) 밑에 있다. ○ 김종직(金宗直)의 시에, “연주산(連珠山) 위에 달은 소반 같은데, 초목에 바람이 불지 않고 이슬 차네. 천 뭉치 솜 같은 구름 모두 없어지려 하고 한 무더기 공문서(公文書) 볼 필요 없네. 시절은 다시 중추(中秋) 아름다운 것을 깨닫겠는데, 손의 회포 누가 오늘 밤 위안 될 줄 알았으리. 갈 길은 또 서쪽 바다 따라 돌아가니, 손가락 끝으로 장차 게[蟹] 배꼽이나 쪼개리라.” 하였다. 청흥정(淸興亭) 현의 북쪽 3리에 있다. ○ 안침(安琛)의 시에, “능성(綾城) 천고(千古) 땅에, 소쇄한 한 정자 새로워라. 다릿가의 흰 돌이 사랑스럽고, 난간 밖 푸른 대가 어여뻐라. 강이 맑아 물고기 헤일 만하고, 뜰이 고요하니 새와 서로 친하네. 일어나서 홍진(紅塵)을 향해 가니, 도로 바쁜 사람 되네.” 하였다.
【학교】 향교 현의 서쪽 2리에 있다.
【역원】 인물역(仁物驛) 현의 남쪽 25리에 있다. 이야원(李陽院) 현의 남쪽 40리에 있다. 여점원(呂岾院) 현의 동쪽 60리에 있다. 부락암원(浮落巖院) 현의 서쪽 15리에 있다. 대림원(大林院) 현의 북쪽 3리에 있으며 누가 있다.
【불우】 쌍봉사(雙峯寺) 중조산(中條山)에 있다. ○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단청한 집이 붉고 푸른 숲 사이에 서로 비치니, 지경의 한가한 모습 속된 안목으로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일세. 학은 푸른 고공에 날아서 지둔(支遁 남북조 시대의 중)을 하직하고, 물고기 금빛 못에 놀면서 혜관(惠寬 혜시(惠施))에게 감사하네. 어지러운 봉우리는 옥잠같이 난간에 이르러 빼어났고 놀란 여울은 구슬패물처럼 뜰에 떨어지는 소리로세. 말하다가 갑자기 조계(曹溪) 물을 보니, 일만 길 하늘에 연해 노한 물결 일어나네.” 하였다. 운주사(雲住寺) 천불산(千佛山)에 있으니 좌우의 산등성이에 있는 석불(石佛)과 석탑(石塔)이 각각 1천 개이다. 또 석실(石室) 둘이 있어 석불(石佛)과 서로 등지고 앉았다. 개천사(開天寺) 천불산(千佛山)에 있다. 인량사(人良寺) 연주산(連珠山)에 있다. 석천사(石泉寺) 석천산(石泉山)에 있다.
【사묘】 사직단 현의 서쪽에 있다. 문묘 향교에 있다. 성황사 현의 서쪽 5리에 있다. 여단 현의 북쪽에 있다.
【고적】 품평소(品平所) 현의 남쪽 30리에 있다.
【인물】 고려 주열(朱悅) 어버지 여경(餘慶)이 현리(縣吏)로서 은사과(恩賜科)에 올랐다. 고종(高宗) 때에 과거에 뽑혀 남원 사록(南原司錄)이 되고, 나주(羅州)ㆍ정주(靜州) 두 고을과 승평(昇平)ㆍ장흥(長興) 두 부(府)를 나가 다스려 모두 좋은 성적을 냈다. 원종(元宗) 때에 충청(忠淸)ㆍ경상(慶尙)ㆍ전라(全羅)를 연달아 나가 안렴사가 되어 위명(威名)을 날로 떨치니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공경했다. 벼슬이 지도첨의부사(知都僉議府事)에 이르고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성품이 활달하고 가산(家産) 늘리는 것을 일삼지 않아 비록 높은 벼슬에 이르러서도 몸가짐을 한사(寒士)와 같이 가졌다. 사신이 되어 사방에 다녔어도 공정하고 청렴함이 한결같고 문장이 풍부하고 필법(筆法)이 또한 기이했다. 구예(具藝)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에 이르렀다. 본조 구치관(具致寬) 구예(具藝)의 후손. 과거에 올라 세조(世祖) 때 좌익 공신(佐翼功臣)에 뽑히고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성품이 바르고 엄하며 맑고 근신하여 산업(産業)을 일삼지 않고 나가면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정승노릇을 하기 무릇 10여 년이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제영】 가경옹금당(佳景擁金塘)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곱고 고운 이슬 꽃 누에 엉키고, 연기 낀 풀 무성하고 푸르더라. 아름다운 경치 금당(金塘)을 감싸고 굽어보니 맑은 흥취 넉넉하네. 어떤 사람이 와서 시를 써 놓았나, 또한 운치 영중(郢中) 곡조를 이루었네. 주옥 같은 글귀에 화답하자니 녹록(碌碌)한 재주 부끄럽네.” 하였다. 동학청유경물신(洞壑淸幽景物新) 정창손(鄭昌孫)의 시에, “동학이 맑고 그윽하여 경치 새로우니 산에 가득한 솔과 대 사계절이 봄일세. 한 구역 연화(煙火) 참으로 선경(仙景)이니 아마도 이 도원(桃源)에 숨어 사는 사람인가.” 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연혁】 선조 27년에 다시 화순을 내합하였으며 광해주 3년에 나누었다. 인조 10년에는 인헌왕후 구씨(具氏)의 고향이라고 하여 능주목으로 승격하였다.
【방면】 주내(州內) 끝이 5리이다. 금오(金鰲) 동쪽으로 끝은 40리이다. 운룡(雲龍) 동쪽으로 끝은 35리이다. 인물(人物) 동남쪽으로 끝은 50리이다. 쌍봉(雙峯) 동남쪽으로 끝은 55리이다. 웅남(熊南) 서남쪽으로 끝은 50리이다. 석정(石亭) 남쪽으로 끝은 25리이다. 개천(開天) 남쪽으로 끝은 30리이다. 천태(天台) 서남쪽으로 끝은 35리이다. 호암(虎巖) 서쪽으로 끝은 40리이다. 망해(望海) 서쪽으로 끝은 15리이다. 북면(北面) 끝은 15리이다. ○ 품평소(品平所)는 남쪽으로 30리이다.
【성지】 금오산 고성 돌로 쌓은 옛터가 있다. 고성(古城) 서쪽으로 3리이며 흙으로 쌓은 옛터가 있다. 고성(古城) 남쪽으로 15리이며 고려 때에 왜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으므로 이름이 왜성(倭城)이며 돌로 쌓은 옛터가 있다.
【창고】 읍창(邑倉)ㆍ동창 동남쪽으로 20리이며, 인물면에 있다. 서창 서쪽으로 30리이며 천태면에 있다.
【교량】 대교(大橋) 북쪽으로 5리이다. 둔전교(屯田橋) 동쪽으로 5리이다. 입교(笠橋) 남쪽으로 20리이다.
【토산】 닥종이ㆍ뽕ㆍ옻.
【사원】 죽수서원(竹樹書院) 선조 경오년에 건립하고 같은 해에 사액하였다. 조광조 문묘 편을 보라. 양팽손(梁彭孫) 자는 대춘(大春)이며, 호는 학포(學圃)이다. 제주 사람이고 벼슬은 교리(校理)인데,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포충사(褒忠詞) 광해주 기유년에 건립하였고, 같은 해에 사액하였다. 최경회(崔慶會) 진주(晉州) 편을 보라. 조현(曺顯) 자는 희경(希慶)이고 호는 월헌(月軒)인데 능성인이다. 명종 을묘년에 달양 권관으로서 절변산(節邊山)에서 순직하였는데 병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주D-002]영중(郢中) : 영(郢)은 땅 이름이다. 어떤 사람이 영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처음에는 평범한 유행곡을 불렀더니 같이 따라서 노래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었으나 양춘백설(陽春白雪)이라는 격조 높은 노래를 불렀더니 아무도 따라 부르지 못하였다 한다. 그래서 격조 높은 노래를 영중곡(郢中曲)이라 한다.